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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대외 정책 건국 1100주년 기념 본문
고려의 한반도 통일 후
고려의 대외 정책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918년 왕건은 후고구려의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1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의 주민은 물론 동남아시아 및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1100년 전 당시 고려의 대외적인 정책을 되돌아봅니다.
고려의 대외 정책
1. 우리나라의 '코리아'(Korea)의 어원은 '고려'입니다.
'차이나'는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秦) 나라에서 비롯됐고
'재팬(Japan)은 일본(日本)의 당나라 때 발음인
'지펀'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한국을 코리아, 코레아, 꼬레 등으로 부르는 것은
고려 시대에 우리나라가 서양에 알려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려는 그 외에도 고려청자, 고려 대장경, 고려불화, 고려인삼 등으로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2. 고려는 한국사에서 다방면으로 외국과 교류하는 가운데
외국인을 받아들인 기록이 사료에 처음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대외정책은 그 당시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과
중국 왕조 교체, 고구려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후삼국을 병합해
한반도 최초의 통일왕조를 연 태조 왕건의
개국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3. 발해가 926년 거란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자
발해의 백성들이 대거 고려로 이주하게 됩니다.
고려사는 934년에 발해 세자 대광현이
수만 명을 이끌고 투항해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 왕건은 후고구려의 궁예를 몰아내고
918년 6월 15일 고려를 건국한 뒤,
935년과 936년 신라와 후백제를 차례로 합병을 합니다.
5. 그 뒤로도 거란족과 여진족이 각각요(遼) 나라와
금(金)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전란을 피해
고려로 귀화하는 북방의 이민족들이 늘어납니다.
6. 고려 8대 임금 현종 1017년에는
말갈족 목사(木史)가 부락민을 거느리고 귀순해 오자
작위를 내렸으며 거란족 매슬(買瑟) 등 14명이
국경을 넘어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7. 이와 같이 고려는 건국 후에 요·금 교체기인 12세기 초까지
약 200년간 17만 명가량의 이민족이
고려로 이주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는 당시 추정 인구 200만 명의 8.5%로,
지금의 국내 체류 외국인 비율 3.9%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8. 고려 이민족들 중 가장 많은 발해계 이민자 수는
38회에 걸쳐 12만 2천686명으로 73%에 이르고
다음은 여진계 4만 4천226명, 거란 계도 1천432명,
그리고 5 대 10국과 송(宋) 나라 한족(漢族)은
42회에 걸쳐 155명이 귀화했다는 것입니다.
고려의 이민족 융화 정책
1. 고려 4대 왕 광종은 후주(後周) 귀화인인 쌍기의 건의에 따라
958년 과거제를 실시해 호족 세력을 누르고
전국의 인재를 고루 발탁한 사례입니다.
귀화인 쌍기에 의한 과거제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1천 년 가까이 관료제의 근간이 된 정책이었습니다.
(공민왕 때 귀화해 청해 이 씨라는 성과 본관을 받은 여진족 퉁두란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1등 공신이 됐다.)
2. 고려의 수도 개성의 외항이던 예성강 하구 벽란도는
중국·일본은 물론 동남아와 아라비아 상인까지 북적거리는
지금으로 치면 유명한 국제도시였던 셈입니다.
3. 베트남 리 왕조의 마지막 왕자 리롱뜨엉(이용상)은
1226년 쩐 왕조가 들어서자 고려로 망명해
화산 이 씨의 시조가 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보다 100여 년 앞서 리 왕조의 왕자 리즈엉꼰(이양혼)도
중국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건너와 정선 이 씨의
시조가 됐다고 전합니다.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의 시종으로 1274년 고려에 들어온
위구르인 삼가는 여러 차례 무공을 세워 벼슬과 봉토를 받고
장순룡으로 개명했는데 덕수 장 씨는 그를 시조로 받들고 있습니다.
또한 인후로 이름을 바꾼 몽골인 훌라타이는
연안 인씨의 시조이기도 합니다.
이민족의 혈통인 고려 왕 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았습니다.
원나라 황제의 딸들이 들어와 왕비가 되다 보니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잇따라 왕으로 등극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원종의 맏아들인 25대 충렬왕은
부인과 장성한 아들을 두었으나,
38세의 나이로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해
쿠빌라이 황제의 사위가 됐습니다.
둘 사이에 태어난 '혼혈왕자'가 바로 충선왕입니다.
몽골계 혈통의 비율을 따지면 충선왕 50%,
충숙왕 75%, 충혜왕 37.5%, 충목왕 68.75%,
충정왕 18.75%, 공민왕 37.5%, 우왕 18.75%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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